2026. 7. 15. 10:02ㆍ운봉소식 2026년

마을탐방 : 서천리 서하마을 1편

: 김대훈 운봉소식 이사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지나 7월 중순이며,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다. 들녘의 벼들은 왕성한 포기벌이로 논에 빼곡이 들어차 있고, 초록빛이 더욱 짙어지며, 마을에는 한결 여유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계절은 변해도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6월호에서는 서상마을을 소개하였고, 이번 7월호에서는 운봉읍 중심부에 자리한 서하(西下)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서하마을은 옛 주조장 앞에서 운봉읍 행정복지센터(읍사무소)로 가는 길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상마을과 경계를 이루며, 주조장 앞에서 직선도로를 따라 운봉초등학교(이하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학교 뒤편 담장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북천마을과 맞닿아 있다.
서하마을의 지형과 마을 이름의 유래, 그리고 서천리가 서남·서상·서하마을로 나뉘게 된 연유는 지난 6월호 서상마을 편에서 자세히 소개하였으므로, 이번에는 천천히 걸으며 서하마을 곳곳을 둘러보고자 한다.
서하마을 역시 서상마을과 마찬가지로 마을 안 도로망이 격자형(格子形)으로 잘 정비되어 있어 동서와 남북 방향이 반듯하게 뻗어 있다. 마을회관은 농협에서 초등학교 정문 방향으로 가다가 동강아뜨리에아파트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만날 수 있다.
마을회관은 정면에, 경로당은 왼편에 위치하며 주로 경로당을 이용하고 있다. 방문한 날도 경로당에서는 노인 5~6명이 담소를 나누며 쉬고 있었다. 입구에는 ‘무더위·한파 쉼터’라는 안내 문구가 크게 부착되어 있다. 회의와 좌담회 장소로 활용될 뿐 아니라 여름과 겨울에는 주민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농번기로 이용객이 많지 않았지만, 모내기가 끝난 요즘에는 주민들이 다시 모여 담소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며 정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하마을은 운봉읍 중심지에 위치한 만큼 식당, 이용원, 다방, 커피숍, 공업사, 카센터 등 다양한 업종의 상가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옛 주조장에서 초등학교에 이르는 도로변 양쪽에는 빈 점포가 적지 않다. 한때 번성했던 시절을 떠올
리면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에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공용주차장 1곳과 전기자동차 충전소 2곳이 설치되었다. 또한 마을 곳곳에 공공기관과 단체가 자리하고 있어 마을은 물론 운봉읍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기관과 단체는 앞으로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다.
서하마을에는 개신교 교회가 두 곳 있다. 마을회관 인근에는 운봉교회가 있고, 초등학교 정문 가까이에는 운봉제일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운봉교회는 1915년 10월 5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북노회 소속 교회로 설립 승인을 받았으며, 1916년 12월 7일 미국인 선교사 위인사의 집례로 창립예배가 거행되었다. 이후 1960년대 초 교회가 크게 성장하면서 현재의 소재지인 서천리 124번지(서천길 15)를 매입해 예배당을 신축·이전하였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참조).
교회에 다다르니 담장 너머로 말끔하게 다듬어진 오래된 향나무와 삼색버들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약 60~70년 된 예배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고풍스러운 자태를 간직한 채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다.

운봉제일교회는 1954년에 설립되었으며(『신운성지』 참조),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이다. 중앙에 출입구를 두고 좌우에 원통형 건물을 배치하여 웅장한 인상을 준다. 교회 전면과 측면에는 조경수를 심어 단정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이제 발걸음을 옮겨 바로 옆 운봉초등학교로 향해 본다. 정문에서 바라본 학교 건물과 강당은 밝은 유채색으로 꾸며져 생동감이 넘친다. 운동장은 푸른 잔디와 붉은색 트랙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학교 전체가 한층 산뜻한 느낌을 준다. 방문한 날에도 여러 명의 어린이들이 잔디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며 뛰노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운봉초등학교는 1907년 8월 23일 사립 운봉만성학교로 인가를 받아 박봉양(朴鳳陽)이 초대 설립관리자로 취임하였다. 1912년 3월 25일 제1회 졸업생 7명을 배출하였으며, 이후 운봉공립보통학교와 운봉공립심상소학교를 거쳐 1941년 4월 1일 운봉공립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1996년 3월 1일부터는 현재의 운봉초등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1994년 운성국민학교를 시작으로 1999년 고남초등학교와 운남초등학교, 2004년 운천초등학교가 차례로 통합되었다. 2026년 기준 약 119년의 역사를 지닌 운봉초등학교는 전북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오랜 전통의 초등학교이다.
정문 왼편에는 개교 100주년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높이 3.3m의 기념탑에는 건립 취지문이 새겨져 있으며, 하단 폭 0.6m에서 상단 폭 1.2m로 넓어지는 형태가 마치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앞면에는 「꿈의 나래로!」라는 시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백년의 요람, 천년의 기상’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학교는 2007년 8월 25일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운동장 서편에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람한 자태를 뽐내며 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 보호수 지정 표지석에 따르면 지정일은 1982년 9월 20일이며, 당시 수령은 약 410년이었다. 2026년 기준으로는 약 454년이 되었고, 높이 29m, 둘레 6.5m에 이른다. 이 느티나무는 운봉초등학교의 교목(校木)이기도 하다. 운봉초등학교 동문은 물론 운봉읍 주민들에게도 사계절의 추억을 간직한 상징적인 나무이다.

다음은 초등학교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한 운봉공공도서관을 둘러본다. 정식 명칭은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남원학생교육문화관 운봉분관으로 다소 길다. 이곳은 1990년 10월 26일 남원공공도서관으로 개관하였으며, 연면적 740㎡의 지상 2층 규모이다. 종합자료실 20석, 아동자료실 10석, 일반열람실 24석, 평생교육실 24석을 갖

추고 있으며, 약 6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을 위한 열람실과 AR·VR 체험존 등 미래형 교육 환경을 구축하여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지역주민들에게도 독서와 문화 활동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도 교육문화관은 지역 문화 플랫폼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다음호에 이어서
서하마을에 대한 기사 내용이 많아 1부는 여기서 맺고, 2부는 8월 소식지에 이어 게재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사람과 사람 : 북천마을 김영옥 이장

: 오경재 운봉소식 이사
북천마을 김영옥 이장님은 운봉읍 이장협의회의 유일한 여성 이장으로서 특유의 친화력과 넘치는 에너지로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인물이다.

김영옥 이장님은 1968년 운봉읍 북천리에서 아버지 고 김정오 옹과 어머니 장수 산서 출신 임태순 여사 사이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활달하고 쾌활한 성격에 붙임성이 좋아 누구와도 쉽게 어울렸으며,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전하는 밝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
운봉초등학교와 운봉중학교를 거쳐 전북축산고등학교를 제15회로 졸업한 후, 미용인의 꿈을 품고 전주에 있는 이모님 댁에서 생활하며 진선미미용학원에 다녔다. 그곳에서 미용 자격증을 취득한 뒤 광주 충장로에 있는 중앙미용실에서 근무하며 전문 미용인으로서 경험과 실력을 쌓았다.
현재의 남편 박용성 님과의 인연은 남편의 여동생인 은희 씨와의

우정에서 시작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은희 씨가 광주에서 취업해 생활하고 있었고, 그 인연으로 김영옥 이장님도 광주 중앙미용실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이후 은희 씨가 부산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함께 부산으로 향했고, 당시 부산에서 문방구를 운영하던 은희 씨의 오빠 박용성 씨의 적극적인 구애로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 갔다. 두 사람은 연애 끝에 1991년 10월 23일 결혼식을 올리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후에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남편이 운영하던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가족은 고향인 운봉으로 귀향하게 되었다.
귀향 후 김영옥 이장님은 운봉읍 소재지에서 그린미용실을 약 5년간 운영하며 가정의 생계를 보탰다. 이후 농사 규모가 커지면서 미용실 운영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농업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시설영농으로 포도 농사를 6년간 지으며 남다른 노력과 지혜로 농업기술과 경영능력을 쌓았고, 현재는 벼농사와 상추 농사를 중심으로 영농 활동을 이어가며 지역 농업 발전에 힘쓰고 있다.

김영옥 이장님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여성의용소방대에서 24년 동안 활동하며 지역 주민의 안전과 재난 예방에 헌신하였고, 농협에서 주관하는 농가주부모임, 농악단원, 생활개선회 등 다양한 기관과 사회단체의 일원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힘써 왔다.
마을에서는 북천마을 부녀회장을 역임하며 주민 화합과 공동체 활성화에 이바지하였으며, 2023년 북천마을 이장으로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마을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또한 각종 마을 행사와 지역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부녀회장으로 활동하며 보여준 열정적인 모습과 성실한 봉사로 주민 화합에 앞장섰으며, 2023년 북천마을 이장에 취임해 춘향제 행사 자원봉사 등 운봉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6년 시장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김영옥 이장님은 남편과의 사이에 지휘, 지원, 지구 세 남매를 두었다. 미용인으로 출발해 아내와 어머니로, 농업인으로,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자로 살아온 그의 삶은 늘 사람과 함께하는 따뜻한 정과 나눔의 정신으로 이어져 왔다.
고향으로 귀향한 뒤에도 넓은 마음과 성실함으로 가족을 돌보고, 북천마을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꾸준히 힘써 왔다. 앞으로도 김영옥 이장님은 가족의 사랑과 주민들의 신뢰 속에서 북천마을과 운봉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더욱 굳센 발걸음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바로잡습니다.

『운봉소식』 통권 48호 「사람과 사람」 코너에 게재된 유평마을 오용탁 님 기사 내용 중 일부 표기가 잘못되어 바로잡습니다.
기사에 기재된 오용탁 님의 배우자 성함은 고 순임 여사이며, 자제분의 성함은 오충록 님입니다.
또한 공로패 수상 연도는 1992년으로 정정하여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기사 작성 과정에서 정확히 확인하지 못한 점 깊이 사과드리며, 앞으로 더욱 세심하게 살피겠습니다.
운봉소식 창간 4주년 가져
글: 운봉소식발행위원회 대표 최석영

지난 6월 16일, 『운봉소식』을 발행하고 있는 운봉소식발행위원회는 월간지 『운봉소식』 창간 4주년을 맞아 조촐한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운봉소식』은 운봉읍민 여러분께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정성껏 키워 오신 지역의 소중한 결실과도 같은 소식지입니다.
창간 이후 『운봉소식』은 단 한 번도 끊기지 않고 발행을 이어 왔습니다. 그동안 운봉읍민 여러분의 삶이 묻어나는 각종 지역 소식을 꾸준히 전해 왔으며, 재경향우회와 운봉읍민 여러분 사이의 소식을 주고받는 가교 역할도 성실히 감당해 왔습니다.
또한 유실된 하마비를 재현하자는 지역 여론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탰고, 운봉애향회와 운봉읍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황산대첩비지 주변에 하마비가 다시 세워지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습니다. 2025년에는 운봉지리산문학회에서 실시한 초·중등 백일장을 지원하며 지역의 문학 꿈나무들을 응원하였습니다. 아울러 각종 문화행사와 지역 활동을 널리 알리는 데에도 꾸준히 힘써 왔습니다.

또한 『운봉소식』은 함께 살아가는 운봉을 만들어 가기 위해 베
트남어판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운봉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 가운데 베트남 출신 주민이 가장 많은 만큼, 이분들이 지역 소식을 보다 쉽게 접하고 운봉의 이웃으로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베트남어로도 『운봉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번역을 넘어, 운봉에 사는 모든 이들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한 작은 실천입니다.
『운봉소식』의 지난 4년은 단순히 지면을 발행해 온 시간이 아니라, 운봉의 이야기를 모으고 운봉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 온 시간이었습니다. 작은 소식 하나에도 마을의 정이 담겨 있었고, 한 줄의 기사에도 지역을 아끼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날 기념식에는 운봉소식발행위원회 대표 최석영, 부대표 오경재, 총무 정우용, 재무 진병달, 사무국장 서승범, 감사 김대훈, 운영이사 이학규, 사진편집 이승미 님 등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김희문 운영이사님께서는 배부 작업에는 함께해 주셨으나, 다른 일정으로 인해 기념사진 촬영에는 함께하지 못하셨습니다.
또한 『운봉소식』은 남원시농촌지원센터로부터 인쇄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이날 자리에는 남원시농촌지원센터 배수빈 팀장님, 이은진 팀원님, 이승미 활동가님께서도 함께 참석해 주셔서 창간 4주년의 의미를 더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운봉소식』이 오늘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발행위원회 이사님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사님들께서는 각자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귀한 시간을 내어 마을 곳곳의 이야기를 취재해 주셨고, 필요한 글을 써 주셨으며, 회비를 내어 부족한 재정까지 함께 감당해 주셨습니다. 또한 발행 때마다 우편 작업과 배부 작업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손을 보태 주신 덕분에 『운봉소식』은 매달 독자 여러분 곁으로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책임을 다해 주신 모든 이사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운봉소식』은 운봉읍민 여러분의 삶과 목소리를 성실히 담아내는 지역 소식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운봉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고, 내일의 희망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지면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창간 4주년을 맞이하기까지 함께해 주신 운봉읍민 여러분과 재경향우회, 지리산문학회 회원 여러분, 귀농·귀촌인 여러분, 그리고 모든 후원자와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운봉의 밥상 / 된장으로 만든 장떡
글: 최석영

늦은 봄에서 이른 여름으로 옮겨 갈 무렵이면 문득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된장에 텃밭 채소를 넣고 부쳐 먹던 장떡이다.
기름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들기름 한 방울이 발라졌다는 이유만으로도 군침이 돌던 때였다. 비가 와서 논밭일을 나가지 못하시게 된 날이면 어머니는 부엌에 앉아 장떡을 부치셨다. 그러고는 대나무로 엮은 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보리밥을 꺼내 찬물에 말아 점심상을 차려 주셨다. 그 바구니를 어머니가 뭐라고 부르셨는지는 이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 담겨 있던 차가운 보리밥과, 부엌 가득 퍼지던 장떡 냄새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요즘 사람들에게 비 오는 날의 음식이라 하면 김치전이나 해물파전을 먼저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내 어린 시절에는 장떡 한 장이면 충분했다. 아니, 그날의 운을 다 써도 좋을 만큼 맛있는 음식이었다. 된장의 구수한 맛에 들기름 향이 더해져 천국의 맛을 가져다주었다.
텃밭에서 나는 채소가 들어가면 그 맛은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마늘대가 싱싱할 때면 마늘잎이 부재료로 들어갔고, 부추가 있으면 부추가 들어갔다. 때로는 젠피나무 잎이 들어가기도 했고, 박잎, 방앗잎, 땡고추 등이 쓰였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넉넉한 양념이 더해진 것도 아니었지만, 그날그날 텃밭에서 얻은 것들이 장떡의 맛을 만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장떡은 늘 같으면서도 늘 달랐다.
지금은 좋은 재료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흔하다. 오히려 너무 잘 먹어서 다이어트를 한다며 일부러 끼니를 줄이는 세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가난했지만 행복했고, 부족했지만 만족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음식이 그리운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 음식 안에 어머니의 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밥 한 그릇과 장떡 한 장에도 자식 배를 든든히 채워 주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어머니의 얼굴은 세월 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또렷하던 표정도, 목소리도 가물가물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 오는 날 부엌에서 부쳐 주시던 장떡 맛은 잊히지 않는다. 된장의 구수한 냄새와 들기름 향, 찬물에 말아 먹는 보리밥의 서늘한 맛이 문득 입안에 살아난다.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데, 장떡 맛은 남아 있다. 얼굴은 희미한데, 그 맛을 떠올리면 아직도 군침이 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음식이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한 시절을 불러오는 것. 잊고 살던 사람의 손길과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늦은 봄에서 이른 여름으로 넘어가더니, 어느새 여름이 되어 장마가 시작되었다. 눈앞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밭일을 쉬게 되신 어머니가 장독대에서 된장을 푸시러 마당을 가로질러 가신다. 비 오는 날이면 어머니도 쉬시는 날인데, 쉬지 못하시고 또 무엇을 하시려는 모양이다.
내 어머니의 이름은 오창례시다. 내가 가면 누가 이 이름을 기억할까 싶어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면서도 철없이 또 생각한다. 그때 먹던 어머니의 장떡을.
수재수재(水哉水哉)

글 : 운봉소식 이사 이학규 훈장
수재 수재란 ‘물이여, 물이여.’라는 뜻으로, 근원이 있는 물이 밤낮으로 쉼 없이 목적지를 향해 흘러감을 공자께서 칭송한 말로 《맹자》 〈이루장 하(離婁章下)〉 18장에 서자(徐子)와 맹자의 대화에서 보인다.
내용을 살펴보면, 서자(徐子)가 “중니(仲尼: 공자의 자)께서 자주 물에 대해 칭찬하며 말씀하시길 ‘물이여, 물이여.’ 하셨는데 어떤 점을 물에서 높이 산 것입니까?”라고 맹자께 질문을 던지자, 맹자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근원이 있는 샘물이 용솟음쳐서 밤낮을 그치지 않고 흘러, 구덩이가 있으면 구덩이를 채운 뒤에 가다가 결국 바다에 이르게 된다. 근본이 있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니, 바로 이 점을 높이 산 것일 뿐이다. 만약 근본이 없다면 7, 8월 사이의 장마에 빗물이 모여 순식간에 도랑들이 가득 차 넘치지만, 비가 그친 뒤에는 그 물이 마르는 것이 잠시 서서 기다려도 될 정도로 빠르다. 그래서 군자는 명성(名聲)이 실제보다 지나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이는 《논어》에 공자께서 냇물 위에 서 계시면서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라고 하신 말씀에 의거하여, 후대의 맹자가 공자의 물에 대한 가르침을 깨닫고 서자(徐子)에게 근원 있는 물이 쉼 없이 밤낮으로 흘러 목적지인 바다에 이르게 됨을 말한 것이다. 또한, 학문을 하는 사람들도 근원이 있는 물처럼 쉼 없이 꾸준히 노력하되, 순서대로 하여 건너뛰거나 소략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그런데 이 가르침이 어찌 학문에만 해당 되겠는가. 모든 일에 물의 정신을 적용하면 좋은 결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물의 중요성은 오행(五行)의 순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물은 1·6의 숫자를 가지면서 첫 번째에 위치하고, 불은 2·7의 숫자로 두 번째에 위치하며, 나무는 3·8의 숫자로 세 번째에 위치하고, 쇠는 4·9의 숫자로 네 번째에 위치하며, 흙은 5·10의 숫자로 다섯 번째인 중앙에 위치한다. 방향과 색계절과, 인성을 오행에 대비해 말하면 물은 북쪽, 검은색, 겨울, 지(智)에 해당되고, 불은 남쪽, 붉은색, 여름, 예(禮)에 해당되며, 나무는 동쪽, 푸른색, 봄, 인(仁)에 해당되고, 쇠는 서쪽, 흰색, 가을, 의(義)에 해당되며, 흙은 중앙, 황토색, 사계절 조금씩, 신(信)에 해당된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바로 오행의 요소는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모두 다 갖춰져 조화롭게 운행되어야 그 속에서 만물이 자라고 순리의 운행에 따라 생장과 수장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 물이 맨 처음에 위치한 것은 어찌 이유가 없겠는가. 설령 다른 것들이 갖춰졌더라도, 물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소중한 물도 적당성을 유지해야 좋다. 그렇지 않고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그로 인해 조화의 균형이 깨져 큰 피해가 야기될 수 있음은 누구나 주지하는 바가 아닌가.
실례를 들어보면, 중국 고대 성군인 요(堯) 임금 시대에 구년 홍수(九年洪水), 즉 구년 동안이나 장맛비가 내려 큰 홍수가 난 엄청난 물의 대재앙이 있었는가 하면, 은(殷)나라 탕왕(湯王) 시대에는 칠년대한(七年大旱)이라고 하여 칠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큰 가뭄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물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을 때 일어나는 재앙인 것이다.
필자가 젊은 시절 스승을 모시고 독서 할 때, 하루는 세숫물을 좀 많이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때 스승님이 보시고는 물을 아껴 쓰라는 경계의 말씀을 주시며 “흐르는 물도 아껴 써야 되느니라.” 하셨다.
처음에는 쓰든 안 쓰든 어차피 흘러가는 물인데 그것을 굳이 아껴 쓸 필요가 있는가 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공부가 익어 갈 무렵, 학자는 모든 사물에 대해 그와 같이 대하기를 마치 내 몸처럼 아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물을 아껴 쓰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7월은 장마 기간인 만큼 운봉소식 독자 제위께서는 건강에 유의하시고, 장마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대비하시기 바란다. “수재, 수재. 물이여, 물이여.” 하고 재삼 읊조려 보면서 말이다.
운봉교회 지역사회에 나눔 실천

고요석 목사(운봉교회)
운봉교회는 지역 나눔을 실천하고자 운봉읍내 각 가구에 계란을 나누는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운봉교회는 운봉읍내 동천, 서천, 북천 마을에 계란 나눔을 진행하였으며 이후 외곽 마을까지 계란 나눔을 계속할 계획이다.
그동안 운봉교회는 지역의 다음 세대를 격려하고 소외된 이


웃을 섬기는 일에도 꾸준히 힘써 왔다. 지역 초·중등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며 아이들이 꿈을 키워 갈 수 있도록 응원해 왔고, 운봉읍사무소의 추천을 받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18가정에 매월 1회 반찬 나눔 봉사를 이어 오고 있다.
또한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이 출산을 앞두고 있는 것을 알고 출산 지원을 하는등 소리 없는 나눔을 실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운봉교회 고요석 목사는 “작은 나눔이지만 지역 주민들께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한다”며, “앞으로도 운봉교회가 지역과 함께하며 이웃과 다음 세대를 세우고 돌보는 일을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운봉교회의 이번 계란 나눔 봉사는 단순히 물품 나눔을 넘어 지역을 돌보고 소통하며 섬기는 기독교적 이웃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것이다.

2026년 64세(1962년생) 폐렴구균 13가 예방접종 실시
○ 접종대상 : 1962년생(1962. 1. 1. ~ 12. 31.
출생자) 남원시 주민등록자
○ 접종기간 : 2026. 1. 2. ~ 2026. 12. 31.
(2026년도에 한함)
○ 접종백신 : 프리베나 13주
○ 접종기관 : 관내 위탁의료기관(한양의원)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2027년 드론 면허 취득 지원사업 수요조사
○ 신청기간: 2026. 7. 1. ~ 8. 7.까지
○ 신청장소: 운봉농민상담소
○ 지원내용: 자격증 취득 교육비
1인당 1,500,000원
※ 2026년도 예산 기준
2027년도 예산 편성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
○ 신청기종: 1종 무인 멀티콥터 조종사 면허
○ 신청요건: 공고일 현재 남원시에 주소를 둔 사람,
운전면허증 2종 이상 소지자
○ 신청서류
- 수요조사 신청서 1부(농민상담소 비치)
- 주민등록등본 1부
- 운전면허증(1종, 2종) 사본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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