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봉소식 2024년 8월호

2024. 8. 16. 10:25운봉소식 2024년


 지난 8월 4일 오후 4시, 취재차 연동마을 가는 길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운 날씨다. 아니 가마솥이 달궈져서 나오는 열과 같이 뜨거운 날씨라고 표현해야 맞는 것 같다. 그러한 날씨가 앞으로 열흘 정도 더 이어진다고 한다. 사람들은 무더위 쉼터나 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할 수 있다지만 동물은 온전히 자기 몸으로 이겨내야만 하는 견디기 힘든 날씨다. 
 어느새 벼들은 대부분이 출수하였고 모내기가 빠른 벼들은 고개를 많이 숙이고 있어서 추석 전에 수확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무더위는 벼들이 익어 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앞으로 좋은 날씨가 계속되어  올해도 풍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8월호는 연동(蓮洞) 마을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운봉 소재지에서 국도 24호선을 따라(황산로) 남원 여원치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마산 고개를 지나 연동 삼거리가 나온다. 운봉 소재지에서 여기까지의 거리가 약 2.3km이며, 이곳에 연동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2단의 대리석 위에 거북이 모양의 자연석에 ‘연동마을’이라고 새겨 올려놓았다. 대리석에는 여기서 연동마을까지 거리가 1km라고 새겨져 있다.

 연동(蓮洞)마을이 명당 마을이고 최초 입향조와 명칭 유래에 대하여 마을 입구의 연정(蓮亭, 연동마을의 모정) 내부의 걸려 있는 편액인 ‘연정기(蓮亭記)’를 통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덕유산 지맥이 남으로 유유히 흘러 멀리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태조 봉인 고남산을 만들고 그 정기를 양지바른 이곳에 연꽃 형국으로 피워 올린 마을 터, 예부터 운봉고원의 3대 명당 마을로 일 산막(연동마을), 이 구색(구상마을), 삼 개암(의지마을)으로 일컫는바, 그중 첫째가는 명당 마을로 우리 마을을 손꼽아 왔다”
 “먼 옛날 홍정승(洪政丞)이 아흔아홉 고개를 굽이굽이 돌아 운봉 여원치(女院峙) 너머에 잠시 머무르던 중 타고 온 애마(愛馬)가 은연중에 찾아와 누운 곳이 이곳 연동이라, 일찍이 이곳에 남양 홍 씨가 마을을 이루어 번창하였다. 최초에 홍 씨들이 3대에 걸쳐 막을 치고 살았다 하여 산막으로 불리어 오다가 그 어느 때인가 연못의 연꽃(蓮)이 유달리 아름다워 연골 마을 연동(蓮洞)으로 자리 잡았다. 세월이 흐르고 혼성 씨족들이 뒤를 이어 번창하니 과연 연 방죽에 피어오른 연꽃 마을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990년 1월에 세워진 ‘연동친화비(蓮洞親和碑)’에도 연동마을의 명칭 유래와 마을 화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1430년경 (약 590년 전) 황희정승(黃喜政丞)의 애마가 누웠던 자리 이곳 산막골에 우리 입향조님들께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시고 그 후 연동이라 칭하셨습니다. 그분들께서는 간담상조(肝膽相照)의 지혜를 모아 마을 화친을 도모 하시며 오늘까지 진실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우리들은 그 고귀한 뜻을 길이 받들어 우리 마을의 발전과 화목과 행운을 기원하고자 마을회관 준공식에 즈음하여 고향 을 떠나, 각 거 산재한 우리들이 고향 그리워 조직한 마양회(馬羊會)에서 이 비를 세웁니다” 라고 비석 옆면에 새겨져 있다. 

 마을 입구에 당도하자 벼 건조장이 나오고 가동마을로 가는 삼거리에는 약 2m 높이의 원형 토담 위에 적어도 수령 100년 이상 된 귀목나무 대여섯 그루가 심겨져 있고, 그 나무 밑에는 단아한 모습의 목제 기와지붕의 ‘연정(蓮亭)’이 위치하고 있다. 여름철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다.
 조금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도로변 우측에 마을 큰 샘이 위치하고 있다. 원래 연동마을에는 3개의 샘이 있었으나 2개는 메워졌다고 한다. 이 큰 샘의 깊이는 223cm, 수위는 182cm이다. 바닥은 암반이고 밑바닥에서부터 막돌을 3단으로 쌓은 후 그 위에 판석을 설치하였으며 판석 위로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설치했다. 옛날에는 큰 향나무가 샘 옆에 있었으나 샘을 보수하면서 베어 버렸고 그 옆에 수령 약 60년으로 추정된 회화나무가 자라고 있고 연자방아 아랫돌과 돌확 1기가 있다. 

큰 샘 바로 옆에는 적 벽돌조 강철기와지붕구조의 연동마을회관(2007년 11월 준공)이 소재하고 있고 연동경로당으로도 공동 이용하고 있다. 고개를 들어 마을을 빙 돌아가며 훑어보니 마치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가 원형의 연꽃 형태를 취하고 있는 듯했다. 마을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오른쪽 산줄기에 노송 약 이십여 그루가 무리 지어 아름다움을 뽐내며 자리하고 있다.

  연동마을 앞 논 가운데 솟은 독뫼(동산)가 만들어진 이유는 ‘홍정승 대감의 욕심과 노승의 보복’이라는 내용의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동마을의 입향조가 된 홍씨 일가가 몇 대에 걸쳐 부자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노승이 시주하러 마을에 들어왔다. 때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스님들이 큰 고초를 겪는 시기였다. 시주 온 노승은 홍 대감 집의 문을 두드렸다. 시주 온 노승을 괘씸하게 여긴 홍 대감이 아랫사람들을 시켜 노승을 잡아다가 고문을 심하게 하였다.
 고문을 당한 노승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홍 대감에게 대면을 청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풀어 주면 이 마을에 대대손손 복을 누리는 처방을 알려주겠다고 제의하였다. 방법인즉 연동마을 앞을 가리고 있는 작은 야산과 대감집 뒷산을 트면 온갖 명예와 재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홍 대감은 노승을 풀어 준 뒤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노승의 말대로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홍씨 일가를 망하게 하려는 노승의 복수였다. 그 후 홍씨 일가는 날로 기울어지는 가문을 바로 세우고자 다시 마을 앞에 독뫼(동산)를 세우고 흙 한 짐에 한 냥씩 하는 일꾼을 사서 집 뒷산을 원래 모양으로 메우고자 하였으나 허사였다.
 결국 홍씨 집안은 연동마을을 뜨고 말았다. 지금도 마을 앞에는 ‘독뫼’가 있고, 마을 뒤 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홍 대감이 많은 돈을 들여 메운 곳이라 하여 ‘돈구뎅’이라 부르고 있다“

 운봉읍 소재지에서 남원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연동마을에 700m 못 미친 지점의 야산에 연동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연동마을 북쪽에는 동서 방향으로 뻗은 지류가 있으며, 여기서 남쪽으로 이어진 여러 갈래의 구릉이 있다. 유적은 지류의 정상부와 남쪽 경사면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연동마을의 동쪽과 서쪽을 감싸고 있는 구릉과 논에도 분포한다. 유적의 북쪽으로 1~2㎞ 내외에는 여러 고분군이 분포되어 있다. 그 고분군은 권포리 고분군·가동 고분군·임리 고분군 등이 있다. 출처는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연동고분군이며 여기서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운봉읍 소재지에서 여원치 쪽으로 약 2km 지점, 국도 옆 연동마을 입구를 옛날에는 ‘장승배기’라고 불렀다고 한다. 남원에서 여원치를 넘어 운봉을 지날 경우 장승이 서 있는 이곳을 지나게 된다. 옛날 어느 고을이나 중요 지점에 나찰귀탈의 화상을 새긴 키가 9척 이상인 목신을 세웠는데 이곳에도 장승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장승배기 뒤편을 ‘갈마지기’ 라 부르는데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갈마음수혈’이란 명당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는 장승배기를 오가는 우마차나 행인들이 이용하던 말들의 목을 축이던 곳이기도 하였다. 그곳에는 지금도 말에게 물을 먹이던 맑은 샘이 있고 간혹 죽은 말을 묻는 말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외딴집이 있는 그곳을 ‘몰무덤‘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 목장승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운봉목공예단지(1993년에 조성)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남원 지역은 전통적으로 목공예 관련 산업이 활발하였다. 조선시대 때 제기로 사용된 목공예의 본산이 바로 남원의 뱀사골이다. 지리산 기슭에서 나는 풍부한 원목은 다양하나 주로 물푸레나무, 노간주나무(노각), 은행나무, 괴목, 소나무 등이 사용되며 그릇의 쓰임과 모양에 따라 사용되는 원목과 제작 방법을 달리해야 했다.
 7, 80년대 이후에는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등의 사용으로 그 맥을 잃어갔다. 하지만 전통 목공예가들에 의해 남원의 목기 산업이 유지됐고, 남원의 특산품으로, 전통산업으로 육성하며 발전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은 사양산업으로 쇠퇴하게 되었다. 

 2023년 12월 말 현재 이 마을에는 총 60세대에 101명(남자 47명, 여자 54명)이 생활하고 있다. 운봉의 여타마을과 비교하면 중 규모에 속한다. 현재 전주이씨, 김해김씨, 죽산박씨 등이 살고 있다. 
 여기서 잠깐 ‘새 동네’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일명 신연동이라고도 하는데 1930년경 전주최씨가 처음 집을 짓고 살다가 그 후 오 씨가 들어오면서 현재 마을 터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는 10세대가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 4세대는 귀농·귀촌 가구이다. 
 주민들 대부분은 밭농사나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으며, 특히 축산에 종사하는 농가 가 많다. 낙농 농가가 네 농가, 한우 농가는 다섯 농가 가 현재 운영 중이다.  

연동마을의 이야기를 쓰기까지 협조해 주신 이길수 이장님과 최내규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과라는 이름보다는 능금이라고 부르던 기억이 있다. 어르신들께서는 종종 능금이라고 부르는데 능금이라는 말의 어감이 친숙하게 들리고 능금이 주는 울림이 사과라는 말보다. 부드럽고 다정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옛 문헌에 (지식백과) 내자나 임금이란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능금이란 이름은 임금에서 유래된 토종 사과를 지칭한다. 사과에는 (능금) 침의 분비를 늘려 갈증을 줄이고 피로 해소에도 좋다고 하며 구연산과 사과산 같은 유기산이 풍부해 새콤한 맛을 낼 뿐만 아니라 설사, 복통에도 좋다고 한다. 특히 수용성 식이 섬유인 펙틴이 풍부해 대장건강에 좋고 기침 가래를 제거한다고 한다.


사과 껍질에 함유된 퀘르세틴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며 폐 기관지를 강화해 폐를 보호하는데, 비타민 C가 많아 생으로 먹으면 감기 예방에도 좋고 불면증에도 좋다고 하니 사과 섭취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음식도 과도하게 섭취하면 위장장애. 신장 질환이 있는 분에게는 칼륨이 많아 적당량 섭취를 권하고 있고 산도가 높아 양치하는 것이 이빨에 좋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나무위키)


최근 사과 가격이 급등하면서 (2023년) 귀한 대접을 받는 사과를 우리 지역에서도 27 농가가 재배하고 있는데. 임원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홍근성 회장(한음농원) 총무·윤준 (지리산 이른 아침 농원) 고문에 문광호 (사과 세상) 최완철 (운봉 사과 농원) 두 분 대표님들이 활용하고 있으며 고문이신 문광호 님은 운봉, 인월, 아영, 산내, 산동 5개 지역 연합 회장님을 엮임하고 있다니 역량의 출중함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홍근성 회장님은 공동출하. 공동구매를 원칙으로 하지만 전국 농협 APC에서 공동선별 공동 출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로 30%대의 가격 차이가 있고 (수탁 공동출하 때) 운봉APC에서는 A품은 공선을 하고 B품은 농가가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지역에서도 안동 사과 경매장에(전국 최대 사과 유통량) 출하하고 있는데. 사과 품질에 따라 가격 결정이 이루어지고 경매 다음 날 입금이 되지만 우리 운봉농협 APC에서는 11월 출하하면 다음 해 5月에 입금이 되므로 약 5개월 동안 농가의 수입이 늦게 이루어져 경제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으므로, 대부분 사과 재배를 하시는 분 중에서는 안동 사과 경매장을 선호하는 농가가 있다고 한다. 현재 운봉농협에서 공동출하, 선별은 하지 않고 작목회만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부분 개인 판매. 개인 선별. 개인 구매가 이루어지는 형태라고 한다. 특히나 기상이변, 기록적인 폭우,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대응해 안정적 농산물 생산 기반 조성, 재해보험 등 농가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고 홍근성 회장은 말하고 있다.


농민신문 2024년 7월 19일 자에 따르면 과수의 구제역이라고 불리는 과수 화상병 (식물 병원성세균, 꽃, 잎, 줄기, 열매 등 조직이 불에 탄 듯 흑갈색으로 마르고 가지나 줄기에 궤양을 형성 과수 전체를 고사시킴)이 돌아 생산량이 크게 줄어 가격이 대폭 상승했다는 것이다. 2023년 4월 초 (경향신문) 꽃샘추위의 동해(冬害) 피해를 받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고 남원시 지자체에서도 통해 피해 농가 조사를 실시하였다. 여름철에는 집중호우로 품질이 저하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문제는 지구의 온난화다. 온실가스가 높다는 둥, 앞으로 기상이변은 자주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만큼, 자연재해 발생 시, 농가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자연재해 예방시설을 확충하는데 적극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겠다.


운봉사과의 재배 분포를 보면 추석 사과 (홍로 사과) 40% 겨울 사과 (부사 저장용) 60% 정도를 재배하고 있는데, 이듬해 봄까지 저장해 두었다가 출하하므로, 적정 소득을 위해 상품성을 유지 할 수 있도록. 저장 능력 또한 향상할 수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사과의 수요와 공급의 적정선을 유지하여, 안전한 먹거리 공급과 신선 농산물을 공급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사과 작목회의 자긍심을 갖고, 자연환경 속에서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내야 할 것이다.


고침안면(高枕安眠)은 ‘베개를 높이 하고 편안히 잔다’라는 뜻으로 곧 아무런 걱정 없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잘 수 있는 상태를 비유하는데 고침이와 (高枕而臥), 고침무우(高枕無憂)도 같은 의미의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사기> 장의열전(張儀列傳)에 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전국시대(戰國時代) 귀곡자(鬼谷子)를 선생으로 모시고 공부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종횡가(縱橫家)로 활약했는데 소진은 합종책(合縱策)을, 장의는 연횡책(連橫策)을 서로 주장했다. 소진이 주장한 합종책이란 진(秦)나라 이외의 여섯 나라 즉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나라가 서로 동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고, 장의가 주장한 연횡책(連橫策)이란 이들 여섯 나라가 서로 진나라와 손잡고 우호 관계를 맺자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진나라에 복종하자는 것이다. 진의 여섯 나라를 향한 동진정책(東進政策)은 소진의 합종책으로 대세가 기우는 듯했으나 그것을 뒤집어서 다시 진나라를 우위로 되돌린 것이 바로 장의였다.


장의는 소진의 주선으로 진나라에 벼슬살이하면서 진의 혜문왕(惠文王)에게 신임받아 재상까지 되는데 여섯 나라의 합종에 파탄의 기미가 보이자 진나라와 화평하여 횡(橫:동서)으로 결탁해야만 한다는 연횡책을 설득하여 6국을 돌며 유세하였다. 진나라 혜문왕 10년에는 장의 자신이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를 침략했다. 그 후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 애왕(哀王)에게 합종을 탈피하고 연횡에 가담할 것을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진나라는 본보기로 한나라를 공격하여 팔만 군사를 죽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애왕은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장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애왕에게 말하길, “전하를 위해 계획하건대 진나라를 섬기는 것이 제일입니다. 만약 진나라를 섬기게 되면 초나라와 한나라가 쳐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초나라와 한나라로부터의 화만 없다면 전하께서는 고침안면, 즉 베개를 높이하고서 편안히 잘 주무실 수 있으며, 나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장의의 유세에 애왕은 결국 진나라와 화평하고 합종을 탈퇴했다. 장의는 이 일을 시작으로 나머지 다섯 나라를 차례로 방문 유세하여 마침내 주나라 난왕(赧王) 4년에 연횡을 성립시켰다. 부연하면, 힘이 약한 나라들이 서로 힘을 합쳐 강한 나라를 대항하는 합종책이나 힘이 약한 나라가 힘이 강한 나라에 저항 없이 복종하는 연횡책이나 방법은 다르지만, 자국을 보호하는 마음은 같은 것이라 하겠다. 힘의 측면에서 보면 가장 좋은 자국 보호책은 막강한 국력을 갖춤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합종이나 연횡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경우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어찌 비단 국가뿐이랴, 사회도, 기업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어진 자는 대적할 사람이 없다(仁者無敵)고 하지 않던가. 힘도 힘 이려니와 인덕은 힘 이상의 것을 갖고 있는바 고침안면 하는데 최상의 묘책이 인덕을 쌓음이니 광복절이 든 8월의 하늘에 우리나라가 앞으로 천만년 높은 베개를 베고 편안히 꿀잠을 잘 수 있는 점에 대해서 잠시나마 사색에 잠겨 봄이 어떨는지 생각하여 본다.



김종우 010-8643-1407
김진수 010-3680-0398
박춘상 010-3678-0510
이칠성 010-3680-7238


바래봉산악회(회장 임승욱)는 산악회 상시 회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왼쪽의 사진은 7월 13일 지리산 뱀산골 백무동 한신계곡 산행입니다. 산악회 회원가입 등 기타 문의는 임승욱 회장(010-9413-2971)에게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용(中庸) 강독(講讀) 개강식

7월22일에 운봉향교 중용 개강식이 충효관에서 있었습니다.
법무사 박경수, 주경야독 이문회 총무의 사회로 진행된 개강식은 서영복 운봉향교 전교의 인사 말씀과 강사 이학규 일요학교장의 중용의 개괄적 설명이 있음 다음 소태수 시의원의 축사와 조촐한 다과가 있음 다음 기념촬영으로 개강식을 마치고 중용 첫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중용은 공자님의 손자인 자사가 쓴 책으로 중용이라는 말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 또는 감정표현에 부족함이 혹은 지나침이 있는지 살펴서, 상황에 맞는 적절함을 취해야 함을 가르치는 학문입니다. 즉, 상대방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서 적절함을 지키라는 것이 중용의 가르침 이지요. 남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적절치 못하면 상대는 나를 원망하거나 부담스러워 할 것입니다. 특히 자기 표현과 주장이 확실한 요즘 세대는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키면서 자기의 표현과 주장을 할 수 있는 덕목이 필요할 것입니다. 중용의 가르침을 후세들도 배워 익힌다면 세대간의 갈등도 덜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요학교 교장 이학규-


다문화 가정의 전통문화

7월 11일 운봉농협은 36명의 이민여성 가족들이 용인 캐리비안베이를 다녀왔다. 다문화 가정의 전통문화 체험과 가족간의 연대 강화로 다문화 2세를 차세대 주역으로 양성하고자 하는 이번 여행은 온 가족이 즐거워 하고 많이 보고 듣는 시간이 되었다.


주지봉과 주지암

주지암은 주지봉에 있는 절로 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 말사로 1695년 김세평과 군민들이 세운 암자다. 주지봉 정상에는 바위 위에는 가로세로 1m의 바둑판 모양의 네모진 돌이 있고 네모판 중앙에는 가로세로 20㎝가량의 구멍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산신들이 내려와 놀았던 곳이라 하며 그 뒤 봉화대의 깃발을 꽂아 남원과 운봉을 잇는 신호 장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전설이 있다.
주지봉은 원래 유래가 깊은 기도 단으로, 가뭄이 들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려 효험을 보는 일이 많았다.
1695년(숙종 21) 남원 부사 김세평(金世平)과 군민들이 영험을 본 기도 단이라 하여, 여러 사람과 뜻을 모아 암자를 세우고 주지암이라 하였다. 1912년 주지 이혜능(李惠能)이 크게 중수하여 충청남도 무량사(無量寺)에 있던 불상을 모셔왔으나, 실화로 당우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1978년 주지 김양선(金良璇)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의 동쪽에는 1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어두운 굴이 있으며, 이 굴은 기도 소로 유명하다. 또, 정상의 바위 위에는 가로세로 1m의 바둑판 모양의 네모진 돌이 있고, 네모판 중앙에는 가로세로 20㎝가량의 구멍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산신들이 내려와 놀았던 곳이라 하며, 그 뒤 봉화대의 깃발을 꽂아 남원과 운봉을 잇는 신호 장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 절 남쪽 50m 지점에서는 최근 ‘住智庵(주지암)’이라 새긴 창건 당시의 표지판이 발견되었다.

주지봉

갓바래봉

갓바래 마을은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입촌리 옛 지명이다. 입촌 마을은 갓바래, 암내, 까막재, 웃몰 등이 있고 메복지, 성떼미, 제비당, 갓바래재, 당굴고개, 여시고개 가 있다. 입촌마을은 속칭 갓바래(깟바래)라고도 불린다.
이는, 중이 삿갓을 쓰고 배낭을 지고 가는 모습의 산 혈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갓을 만드는 사람이 살았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입촌(삿갓입 笠 마을촌 村)으로 불린다. 마을 동쪽은 운봉읍을 접경으로 높은 산이 있는데 갓 바래봉이라 부른다.

갓바래봉 석축 흔적

이 재 또한 갓바래재(입망치)로 불린다. 일설에는 홍거리와 두무실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아홉 구비혈 중에서 바래 혈이 있다고 하여 갓바래재라고 한다.
입망치에서 운봉읍 행정리와 이백면 양가리 경계에 있는 수려한 산으로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섬진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분수계가 되며 이백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주촌리에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 입망치를 사이로 양지 산성 남쪽에 있는 수정봉은 운봉읍 주촌리와 이백면 과립리를 경계로 두 개의 산봉우리를 포함하여 성의 평면 형태는 표주박 형태를 이룬다.
확인된 성의 길이는 150cm 정도 된다. 성의 부대시설은 망대와 우물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있었으며 망대는 성의 중앙부와 서쪽에 원형의 석축 형태로 남았고 동쪽 산봉우리의 남쪽 경사면에 있는 우물지는 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석재를 이용하여 우물 시설을 마련한 것으로 추정된다.
▶ 다음호에 계속
☞ 운봉지킴이동회에 대한 문의 010-3131-1088


2024년 7월 31일 기준 운봉인구

인구수 : 3,589명(남 1,744 / 여 1,845)세대수 : 2,035세대인구수 2,035세대


○ 2024년 신지식농업인 선발 안내

-신청기한 : 8. 12.(월)까지* 신청서류 일체 기한 내 제출
-선발대상 : 농업의 생산.가공.유통 등을 개선하는 로운 지식을 개발하여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개발된 지식을 사회적으로 공유함으로써 농업.농촌의 혁신을 주도하는 농업인 또는 농업법인
-선발기준 : 적극성, 창의성, 가치창출성, 사회적 공유성 등
-신청장소 : 사업장 소재지 읍면동
-제출서류 : 신청서, 제반 증빙서류(재무제표, 포상, 특허 등 해당사항)


아기가 태어났어요.

지난 7월 7일 문병희,호엔뉴씨 사이에 문지우양이 태어났습니다. 문병희씨와 호엔뉴씨의 러브스토리는 운봉소식 2023년 4월호에 실린바 있으며 결혼식은 지난해 6월에 올렸으며 이달에 따님을 얻으셨다. 다시한번 문병희님과 호엔뉴씨의 기쁜 소식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다복하고 평화로운 가정 이루시길 바랍니다.



8월 추천도서

긴긴밤긴긴밤

저자 : 루리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년도 : 2021
소장자료실 : 아동자료실
청구기호 :
J 813.8-루239긴

 

식탁위의 세계사식탁위의 세계사

저자 : 이영숙
출판사 : 창비
출판년도 : 2012
소장자료실 : 종합자료실
청구기호 : 909-이64식


8월 운봉소식후원

 

부정기 후원

운봉새마을금고, 운봉읍장 이은주

 

정기후원

배분남, 오용담, 정원재, 이은숙 조미현, 운봉읍발전협의회, 양재우

 

본 후원 명단은 매달 5일 기준입니다.


 

8월 4일 김성남 여사 별세
상주: 문진택
발인 8월 6일 인월장례식장


 

운봉소식은 ‘전라북도 마을 공동체 미디어 활성화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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