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봉소식 8월호

2023. 8. 4. 08:15운봉소식 2023년

공안마을

지난 7월 29일 오후 3시, 취재차 공안마을 가는 길이다. 무척이나 무더운 날씨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지금까지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라는 용어를 써왔으나 요즘은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는 말이다.
긴 장마를 거치고 무더위에 벼들은 어느새 이삭을 출수하였고 대부분이 익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올해도 풍년이 예상된다.  지난 7월 29일 오후 3시, 취재차 공안마을 가는 길이다. 무척이나 무더운 날씨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지금까지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라는 용어를 써왔으나 요즘은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는 말이다. 
긴 장마를 거치고 무더위에 벼들은 어느새 이삭을 출수하였고 대부분이 익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올해 도 풍년이 예상된다. 농부들의 땀방울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날씨가 좋아서 우리 농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이번 8월호는 공안(孔安)마을을 소개하고자 한다. 옛 운남초등학교 뒤 포장도로를 따라가다가 유평마을을 지나면 허브산채시험장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공안마을이 시작된다. 비교적 평평한 지형 위에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옛날 고택도 있었지만 8, 90년대 이후 벽돌 주택이 주를 이루고 있고, 최근에 건축된 주택도 눈에 띈다.
동남쪽으로 조금 고개를 들어보니 전북학생교육원이 눈앞에 들어오고, 바로 그 위에 세걸산(해발 1,220m)이 위용을 자랑하며 위치하고 있다. 세걸산은 지리산 정기가 서려 있는 바래봉과 고리봉의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어서, 산내 쪽으로 천왕봉 등 지리산 영봉들을 조망할 수 있고, 서북쪽으로는 널찍한 운봉 들녘과 운봉고원을 멀리 내려다볼 수 있는 영봉 중의 한 곳이다.
세걸산(世傑山)의 한자를 풀이하면 ‘세상에 빼어난 인물이 날 명산’이라는 뜻이다. 우리 운봉읍민들도 세걸산을 한자 풀이대로 생각하고 있고, 읍민들의 정신적 토대가 되는 명산이다. 웅장한 이곳 세걸산의 정기가 뻗어 내려와서 공안마을 깊숙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또한 세걸산에서 발원한 깨끗한 물은 공안 들녘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공안마을은 소가 누워있는, 즉 와우형국의 명당 마을이다.
공안마을은 원래 공한리로 불리다가 공안리(孔顔理)라 부르게 되었고, 그 후 원공안리(元孔安里)라 했다가 다시 공안(孔安)으로 바뀌었다. 공안(孔安)이란 원래 이곳에 훌륭한 고을 선비들을 초빙하여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던 공안재(孔顔齋)란 서재가 있었다. 서재 이름이 말하여 주듯이 공자(孔子)나 그의 수제자 안자(顔子)와 같은 성현이 배출되도록 기원하는 의미에서 첫 글자를 따서 공안제(孔顔齋)라 명명하였는데 이 마을을 ‘공안재가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공안리(孔顔理)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운성지에 의하면 공안재는 1758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오상복이 지은 곳으로 일명 표은암(豹隱巖)이라 한다. 현재 향교 뒷산 8부 능선에 표은암 터가 있는데 마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서재가 있었던 자리는 공안마을 입구 북쪽 밭이라고 한다.  삼국시대 때 밀양박씨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당시는 운봉이 백제와 신라의 국경 지역으로 분쟁이 잦고 불안한 시기여서, 인구 역시 소규모 집단을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신운성지 참조)
마을 입구에는 하얀 대리석에 ‘고운향 공안마을’이라고 새겨져 있고 바로 그 아래에는 공안마을 유래가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표지석을 끼고 오른쪽으로 약 80m쯤 가자 1982년에 세워진 마을회관이 비교적 깨끗하게 유지, 사용되고 있었다. 회관 바로 앞에는 공안마을 주민을 비롯한 인근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진료할 공안마을 보건진료소가 위치하고 있다.

보건진료소 남쪽 약 30m 지점에 길 밑으로 조그만 샘이 하나 있는데, 옛날에는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이 우물을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했다고 하고, 지금도 빨래 등을 하고 있는 흔적이 있다. 샘이 있는 바로 옆에는 옛날 고택에 강철 패널로 지붕을 개량하였는데, 마당 입구 행랑채에는 절 만(卍)자가 새겨져 있고 바로 밑에는 천제단(天際壇)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인터넷 다음 지도상에는 지선암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1987년 태고종 사찰로 설립되었다.

지선암에서 남쪽으로 약 100m 지점에 공안경로당이라고 표시된 현판이 붙어 있고 그 현판 위로는 ‘세걸정(世傑停)’이라고 편액이 부착되어 있다. 목조 강철 지붕으로 4면은 알루미늄 새시와 유리창으로 안과 밖을 서로 볼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 경로당 옆에는 부속건물도 소재하고 있다. 마당은 보도블록으로 시공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유지, 사용되고 있다. 노인 및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공안마을은 원래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노거수가 드물었다. 공안경로당 뒤편에 수령 약 100년으로 추정되는 귀목나무 1그루가 심어져 있어서 공안경로당 지붕의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수고는 약 12m, 흉고 둘레 2.0m, 수관폭은 20m이다. 수관폭 군데군데에 일부 가지가 고사하여 있다.
마을 위쪽에는 1987년 벽돌집으로 지어진 소망교회가 있다. 예수교장로회 교회다.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펼쳐진 그 위로 교회 건물색과 십자가가 잘 어울려서 한 폭의 그림 같다.
마을 입구에는 전라북도 농업기술원 ‘허브산채시험장’이 있다. 1992.3.2.일 ‘남원 고랭지 화훼시험장’으로 설립되었다가, 2007.8.3.일 ‘화훼자원연구소’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2010.7.31.일 ‘허브 시험장’으로, 2019년에는 지금의 명칭으로 다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주요시설로 시험포장, 대지 등 토지는 총 43,536㎡(약 13,170평)이며, 연구실, 관리사, 온실 등 시설은 총 3,842㎡(약 1,162평)로 큰 규모이며, 서양 허브 작물 선발 및 이용성 연구와 자생허브 작물 부가가치 향상 및 안정생산을 위한 기술 등을 개발해 왔으며, 지금은 동부 산악권의 새로운 소득작목으로 산채를 연구하고 있는데, 특히 ‘곤달비’ 작목의 지역특화작목 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다. 허브 산채 유전자원의 수집과 보존에도 힘쓰고 있다.

2023년 6월 말 현재 이 마을에는 총 39세대에 남자 36명, 여자 31명이 생활하고 있다. 운봉의 여타마을과 비교하면 중규모에 속한다. 현재 전주이씨, 성주배씨, 풍산류씨, 광산김씨 경주정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살고 있다.

주민들 대부분은 밭농사나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으며, 특히 원예작물에 종사하는 농가가 많다. 원예작물 재배 농가 중 상추재배가 10 농가, 방울토마토는 6 농가, 화훼가 2 농가, 사과, 파프리카가 각 1 농가씩 다양한 작목을 재배하고 있다. 공안마을 주민들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원예 농업기술을 받아들여서 지금은 고소득을 올리는 주민이 많다. 마을 주민 간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어려움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하면서 오순도순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1895년부터 공안마을에는 운봉군 남면 청사(허브 산채 시험장에 위치)가 있던 곳으로, 이 무렵 마을은 대촌(大村)이었으나 남면 청사가 운봉으로 옮겨가고 6.25를 겪으면서 마을이 크게 위축되었다. 과거 마을 입구인 허브 산채 시험장 주변이 공안림(孔安林)이 조성되어 있어서 큰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전통으로 이어오던 당산제도 경지정리 때 당산과 당산나무(벚나무)를 제거함으로써 단절되었다. 참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이제 ‘오래된 것은 문화유산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지금 남아 있는 조그만 유산이라도 보존되길 당부하고 싶다. 한번 훼손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운봉농협 2023년 산지유통 혁신 대회

2023년 7월 29일 운봉농협, 남원시 조합 공동 사업법인은 운봉농협 조합원들이 생산해 내는 우수한 농산물을 대외에 홍보하고자 산지 유통 혁신대회를 했다.

우수농산물(GAP) 경진대회 개최
작목반에서는 파프리카, 상추, 대추 방울토마토, 포도 등을 출품 공판장 경매사 3명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출품 농산물 중 대상 1명 본상 2명을 시상하였다.

외형: 기본적 품위, 고른 색, 고유의 향 
식감: 아삭한 식감, 고유의 맛
채점: 2~10점까지 배점을 두고 엄선하여 시상하였다.

2023년 7월 29일 진행한 2023년 산지 유통혁신대회는 내외빈 4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박정용 센터장 , 농협유통 유경근 부장, 김세광 팀장, 조경현 과장이다.

이번 대회의 의의는 우수농산물 생산방법과 산지 유통을 배우고 농협의 이념을 확대 재생산하여 함께하는 100년의 운봉농협의 구현이다. 사진은 왼쪽부터 남원시청 정철균 계장, 김영훈 과장

고랭지 농산의 우수성과 고유의 브랜드를 키워 소중한 운봉의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다짐과 결의의 장이 되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김대훈 상임이사, 이정린 도의원, 소태수 시의원


정답보기  https://unbong2022.tistory.com/5


봉심 (奉審)

7월 24~27일 운봉향교는 매년 봉심(奉審)을 진행하고 있다. 봉심은 조선시대 왕명을 받들어 왕실의 묘우나 능침을 살피고 점검하는 일을 지칭하는 용어로 매년 정기적인 봉심과 임시적인 봉심이 있는 유교 의식이며 현재는 향교 유림들이 문묘에 참배하는 것도 봉심이라 한다.  

운봉향교는 2022년에 진주 일대의 서원을 둘러보고 선현의 학문을 기렸으며 올해는 특별히 공자의 나라 중국을 방문하여 공자의 가르침을 받들고 기렸다. 서영복 전교를 비롯한 30여명의 유림들은 유가의 창시자 공자(孔子)의 고향 곡부를 찾아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을 둘러 보고 충(忠)·효(孝)·예(禮)를 기리고 다졌다.


추억 파먹기

아침에 감자를 먹다가 옛날 일이 생각났다.
70~80년대로 기억되는 그 시절 이맘때면 온 동네가 감자 천지다.
아침 밥상에는 밥할 때 넣은 감자가 밥그릇에 담기고  감잣국이 올라온다. 반찬으로는 알감자로 만든 감자조림과 감자채볶음이 있고 갈치나 명태늘  넣고 조린 감자조림이 있는 날은 그날이 운봉장날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뿐인가 창고, 헛간, 대문간, 마루 밑 할 것 없이 그늘진 곳이면 감자가 자리를 잡을 잡아 멍멍이는 햇볕 피할 곳을 잃고 감나무 밑이나 뽕나무 밑으로 쫓겨났다. 또 어느 집이나 쿰쿰하니 감자를 썩혀 우려내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먹을 게 귀했던 그 시절, 썩은 감자도 버리지 못하고 큰 대야에 썪은 감자를 넣고 썩은 감자를 우렸다. 감자를 물에 썩히고 새물을 갈아주며 감자에서 탄수화물과 섬유소를 분리해 녹말을 만들었다.  썩은 물 버리고 새물 채우길 1주일 정도 반복하면 바닥에 가라앉은 감자녹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을 건져내 햇볕에 말려 고운 가루로 만든 다음 울타리에 열린 돈부콩을 고명으로 얹은 개떡을 먹었는데 그 시설 그리도 냄새난다고 먹기 싫어했던 감자 개떡을 먹고 싶은 8월의 한여름이다.

-편집자-


포도(葡萄, grape)는 포도과의 낙엽 활엽 덩굴성 나무 및 그 열매를 이르는 말이다.
포도는 크게 보라색 포도(blue grape) 청포도(white grape), 적포도(red grape) 정도로 구분한다. 한국은 주로 보라색 계열의 생식용 포도를 재배했으나 최근 들어 산포도(머루 포도) 샤인 머스캣 블랙 사파이어 등을 필두로 재배종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과일의 수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여러 종류의 포도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원산지는 오늘날의 중동 지역으로 성경에도 등장하며 약 8000년 전 고대 유적에서 포도 씨가 발견된 것이 발견되어 인간이 포도를 재배한 것은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가요 중 청산별곡에 다래랑 머루랑 이라는 가사에 등장하며 서양의 포도 종류가 처음 들어온 것은 개화기 서양 선교사들로부터다.
‘포도-葡萄-’라는 이름은 각각 ‘匍(길 포)’와 ‘ (질그릇 도)’에 풀 초부(艸)가 추가된 것이며, 양자 모두 ‘포도’라는 단어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 어휘의 어원은 페르시아의 친척 어인 박트리아어에서 포도주를 뜻하던 단어 ‘badawa’를 음차한 것이라 한다. 그러니 외래어 ‘badawa’를 표현하기 위해 비슷한 발음의 글자를 만들어 붙였다는 말인데  순우리말로 훈을 ‘멀위’로 달고 있으며, ‘머래’, ‘머루’라고도 불렸다. 다만 오늘날 머루는 속은 같으나 흔히 재배되는 Vitis vinifera종과 구별되는 Vitis coignetiae(산포도) 종만을 말한다.


그 때문에 일부 지역과 농가에서 재배되고 있는 머루 포도는 머루라기보다는 포도의 일종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포도 자체의 맛이나 식감보다는 포도의 씨나 껍질 때문에 먹기가 불편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이런 사람들의 기호를 맞춰  '톰슨 시드리스(Seedless)' 나 '플레임 시드리스', 청포도 등 씨 없는 포도 종류가 개발돼 시판되고 있다.
하지만 시드리스 종은 새콤한 맛은 없어서 캠벨 종의 신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좀 아쉬운 평을 받는다. 물론 신 것보다 단 포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나라는 '톰슨 시드리스'가 더 익숙하다.
건포도도 씨 없는 포도로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가장 많이 유통되는 캘리포니아 산 건포도는 100% '톰슨 시드리스'로 만든다. 운봉에도 씨없는 청포도 품종인 샤인머스캣을 재배하고 있고, 재배면적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신선한 포도는 하얀 왁스 같은 가루가 묻어있는 경우가 있는데, 흔히 먼지나 농약으로 오해하지만 사실 ' 블룸'' 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과일의 수분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서 없으면 포도의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씻을 때 밀가루에 넣은 뒤 물에 헹구면 곳곳이 잘 씻긴다고 한다.
상자에 담겨 판매되는 포도는 종이로 싸여 있는데, 이 종이는 대부분 재배 시 농약, 해충, 병균을 막기 위해 포도송이가 자랄 때 씌운 것이다. 유기농 포도의 경우야 상관이 없겠지만, 일반 포도는 농약이나 비료가 묻어 있을 수 있으니 구입한 뒤 깨끗한 종이로 갈아주는 것이 좋다. 종이봉투를 씌워 재배하는 배나 사과, 복숭아는 봉투를 제거한 뒤 완충재를 사용하는데, 포도는 수확할 때 같이 따서 박스에 담아 판다.  박스로 구입했다면 되도록 봉투는 버리고 다른 종이로 싸 보관하며 먹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맛’의 기준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라 아는 맛이 무섭다.  내가 먹던 맛, 그것이 기준이고 그 기준에서 조금 더 달고 향긋하고 감칠맛이 나는 것, 그것이 맛있는 것이 되고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운봉 포도는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만한 상품이다. 당도와 산미 그리고 향 등이 골고루 조화를 이루고 고랭지 과일의 신선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운봉포도 화이이팅!


 

고사성어 불원복 "不遠復"

불원복은 ‘머지않아서 회복한다’, ‘멀리 가지 않고서 돌아와 회복한다’는 뜻인데 출처는 주역(周易) 64괘에 24번째인 복(復)괘 초구(初九) 효사(爻辭)에 보인다.

내용을 살펴보면, 복 괘의 형성이 땅이 위에 있고 우뢰가 아래에 있어 우뢰가 땅 가운데 있는 모양이다.(    ) 땅(≡≡)은 음(陰)만 세 개이고 우뢰(     )는 음(陰)이 두 개에 양(陽)이 하나인데 이 맨 아래 있는 양이 바로 선(善)으로 돌아와 회복했다는 것이다. 주역에서 음은 소인(小人)을, 양은 대인 군자(大人 君子)를 상징하는 바 많은 소인들 속에서 대인군자가 미약하나마 발생하여 앞으로 큰일을 하려는 포부를 갖는다. 하지만 발생 초기이므로 모든 것이 미약하기에 앞으로 큰일을 하기 위해선 재주와 덕망을 겸해야 하기에 자기 닦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뢰 복 괘의 초효(初爻)에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도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복 괘는 달에 배치하면 동짓달에 해당한다. 예전에 왕들은 이 동짓날에 복 괘의 괘상을 보고서 관문(關門)을 닫아 장사꾼과 여행자들이 다니지 못하게 하며 임금은 사방을 시찰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양의 착한 마음을 길렀다 한다. 복 괘의 상을 보고 천도에 순응한 것이다. 어찌 단지 임금뿐만 이겠는가.  한 사람의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 일반인들도 이 복 괘에 해당하는 동짓달 아침에 나에게 혹 잘못된 점이나 실수가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반성하여 빨리, 착한 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너무 고치기 어려울 지경에 까지 가서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남송의 대 유학자인 주자(朱子)가 자기의 선생인 이연평께 경전에서 얻은 글귀가 있느냐고 여쭙자, 이연평 선생이 주역에서 ‘불원복’이란 글귀를 얻었다. 라고, 대답했다.

의병장 고광순(1848~1907)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

우리나라에 항일 운동사 전시 박물관이나 근대 역사책을 보면 태극기에 한자로 불원복이란 글귀를 써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전라남도 구례 일대에서 항일 운동으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이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으로 ‘불원복’이란 글자를 태극기에 수 놓아 항일 운동의 정신을 고취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고통의 왜정 치하에서 광복을 맞이했는데 광복(光復)이란 암흑 같은 왜 정치하에서 벗어나 태평 광명의 빛을 회복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올해 8월 15일은 78번째 맞이하는 광복절이다. 광복의 복(復)자가 불원복의 복자와 같은 의미이고 보면 이날 국기를 게양하면서 불원복, 광복의 단어를 생각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독립군의 얼을 되새겨 봄이 어떨까 싶다.




람천(藍川)을 살리자 

이우홍 '지리산환경보전회' 상임고문

사랑하고 존경하는 운봉읍민 여러분.  운봉에는 2017년 7월 7일에 발족한 “지리산환경보전회”가 있습니다. 우리 운봉의 청정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사회운동 단체입니다.  지난 7년간 저희 “지리산환경보전회”는 환경을 지키고 보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하여 운봉읍민께 운봉의 뿌리이자 근간인 람천(藍川)을 알리고 보전하기 위해 투고하게 되었습니다.

람천(藍川)은 지리산 고리봉에서 발원하여 산내면을 지나 전북과 경남 도계에서 좁은 협곡을 통과하여 임천으로 흘러드는 지방 2급 하천을 말합니다.

• 개설

운봉읍, 산내면. 아영면. 인월면은 낙동강 수계에 속한다.  섬진강과 낙동강 수계의 분수계는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 운봉읍과 장수군 번암면, 남원시 산동면, 이백면, 주천면의 경계가 됩니다.
특히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고기리와 운봉읍 덕산리 주촌리의 경계는 백두대간 분수계(단일 분지인 운봉 분지 내의 곡중분수계(divide in valley)가 되어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계가 된다. 운봉 분지에서는 낙동강의 제4지류인 주촌천(운봉읍 주촌리) 운봉천 (운봉읍 동천리)이 지리산으로부터 발원하고  서쪽 분지 벽에서 발원하는 준향천 등의 여러 소하천이 합류하여 제3 지류인 “람천(藍川)”이 됩니다.
람천(藍川)은 황산과 덕두산 사이의 좁은 협곡을 통해 인월면으로 흐른다. 아영면과 인월면을 유역으로 하는 낙동강의 제4 지류인 풍천 (아영면 성리. 인월면)은 인월면에서 람천(藍川)에 합류된다. 람천(藍川)은 덕두산 동쪽의 좁은 협곡을 통과하여 산내면으로 흐른다. 낙동강의 제4 지류인 만수천(산내면)은 산내면에서 람천(藍川)에 합류된다. 산내면을 지난 람천(藍川)은 전북과 경남의 도계에서 다시 좁은 협곡을 통과하여 제2 지류인 임천이 됩니다.
임천은 제1 지류인 남강, 남강은 분류인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흐른다. 운봉 분지에서는 같은 단일 분지이면서도 고리봉과 만복대 사이에서 발원한 원천천이 구룡계곡을 지나 요천을 경유하여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요천 일대와 운봉고원 사이에는 정단층 활동으로 서로 400m의 높이 차이가 생김에 따라 산간 분지의 개략적인 지형이 형성되었다. 수분의 공급이 없는 산간분지 개형의 말단부는 풍화에서 제외되고 편마암과 인접한 지역은 수분공급으로 화강암의 풍화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산간분지 개혁의 말단부는 풍화되지 않은 화강암체의 산지로 남게 되고 풍화가 진행된 부분은 분지적으로 되어 람천(藍川)이 흐르게 되었다. 편마암 지대는 침식이 강하여 지리산지로 남게 되어 람천(藍川)의 주 수원지가 된다. 지리산과 운봉 분지의 경계 부분에는 대규모 기후단구가 분포하고 있다. 람천(藍川) 서북부에는 화강암의 침식면이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람천(藍川) 주변에는 넓은 충적층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 현황

길이는 24Km이며 종점 하폭은 87m에 달합니다.
운봉 분지를 하나의 유역으로 람천(藍川)이 흐르며, 여기에 아영면. 인월 분지를 유역으로 하는 풍천이 합류한다. 세걸산(1,216m)에서 발원하는 여러 계곡이 모여 공안천이 되며 이것이 람천(藍川)의 시작인데 람천(藍川)은 산내면 일대를 유역으로 하는 만수천과 만나 람천(藍川)으로 흐르며, 임천은 남강을 경유하여 낙동강으로 유입됩니다.  덕산 저수지의 수원이며 낙동강의 제4지류인 주촌천은 덕산 저수지를 넘어 행정리에서 람천(藍川)에 합류한다 동천리 팔랑치에서 서북쪽으로 흘러 명산교를 지나 북쪽으로 꺾여 산덕리를 지나 북천리를 경유하는 지방 2급  하천이며 낙동강의 제4류인 운봉천이 람천(藍川)에 합류한다. 다시 수정봉에서 발원한 준향천과 바래봉 서쪽에서 발원한 용산천이 람천(藍川)에 합류 여기에 운봉 분지의 북쪽 분지 벽과 권포리, 임리 일대의 소기복 침식면 사이에서 흘러온 하천이 합류한 뒤, 황산 남쪽의 좁은 출구를 통하여 운봉 분지를 벗어난다.  봉화산 부근에서 발원하는 풍천에는 아영,인월분지의 모든 세천(細川)들이 합류한 뒤 인월면에서 람천(藍川)으로 유입한다. 람천(藍川)은 인월면에서 좁은 출구를 통해 산내면으로 흐른 뒤 만수천에 합류한다. 만수천은 지리산을 굽이굽이 흘러 실상사 부근에서 광천과 합류하여 임천으로 흐른다. 현재 광천 제방은 새로운 주민 휴식 공간과 조깅 코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운봉이야기 2회

 

운봉의 총면적은 67.61㎢이다.
이는 남원시 전체면적의 9.2%로다. 남원시의 9.2%다. 이를 다시 전답(田畓)별 비율로 나누면 논이 1,540ha로 77.2%, 밭은 453ha로 22.8%이다. 임야는 4,155ha로써 총면적의 59.8%다. 그리고 하천과 도로로 기타가 812ha로 11.7%이다. 운봉의 인구 현황을 보면 가구 수는 2,089호이고, 인구는 3,911명인데 남자가 1,884명, 여자 2,027명이다. 여기에는 외국인 남자 39명, 여자 32명 총 71명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공식적 기록이 있지 않은 사람은 논외다.

지난 호에 필자는 운봉이 어떻게 해서 운봉이라 불리게 되었는가에 대해 논해봤다. 그렇다면 이제 그 시점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누구일까에 대해 가늠해 보고자 한다. 전라북도에서 발주하고 군산대학 산학 연구단에서 수행하여 올린 보고서 첫 장에 제나라 전횡의 망명과 고조선 준왕이 한반도로 이주했고 그들이 대륙의 제철 기술을 가져왔고 그것이 운봉 땅에서 주 산업이 되었고 그것을 운봉 가야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고조선의 유민 일부가 대륙을 통해서건 바다를 건너서건 한반도로 들어왔다는 것은 학계의 중론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韓)이라는 국호를 썼는데 마한 진한 변한이라 불렀다.

보고서는 제나라 전횡서를 근거로 고조선의 잔존 세력이 한반도 일대로 남하했고 그들이 각개로 자리를 잡고 크고 작은 나라를 세웠고 이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눠 마한 진한 변한 이라고 통칭한다. 그러나 이는 중국 쪽에서 바다 건너 동쪽의 소소한 집단을 부르는 통칭이지 어떤 나라의 국호는 아니다.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지역 내부로 들여다보면 소규모 나라들이 모여 중규모 연맹체를 만들고 중규모 연맹체가 모여 다시 가장 큰 나라가 대장을 먹고 그들이 그때그때 마다 이익과 사안에 따라 합종연횡하며 방어와 공격을 하고 성장해 나갔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본기에 ‘서기 6년 가을 7월에 왕이 웅천책(熊川柵)을 세우자, 마한 왕이 사신을 보내 나무라며 말하였다. “왕이 처음 강을 건너왔을 때 발 디딜만한 곳도 없었으므로 내가 동북쪽의 100리의 땅을 떼어 주어 편히 살게 하였으니, 왕을 대우함이 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마땅히 이에 보답할 생각을 하여야 할 터인데, 이제 나라가 완성되고 백성들이 모여들자, 나와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하면서 성과 목책을 크게 설치하여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니 그것이 의리에 합당한가?” 왕은 부끄러워서 드디어 목책을 헐어버렸다.’


백제가 세를 확장하자 마한의 목지국 왕이 백제 온조왕을 견제했다는 말인데 백제는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조금씩 세를 불려 나갔다. 아마도 백제가 성장해 나가는 시기에 목지국과 백제 사이에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소국들이 있었을 것이며 부족 연맹체인 이들이 서로 합종 연행과 침략이 다반사였을 것이고 때문에 백제의 급성장을 목지국에 예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전제주의 국가가 아닌 부족연맹 형태의 나라이니 목지국이 백제가 나를 괴롭히니 와서 도와 달라고 해서 목지국을 도와줄 소국은 없었을 것이다. 말을 듣지 않는 소국이 있다면 쳐들어가 완전히 굴복시켜야 하는데 목지국에는 그럴만한 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기록은 서산대사가 남긴 청허당집 황령기에 있는데 황령암이라는 암자의 내력을 서술하는 부분에 잠깐 등장한다.
“마한의 왕 효가 지리산 뱀사골에 궁을 짓고 그 궁의 이름을 ‘달의 궁전’이라 지었다. 그 후 사람들이 달 궁이라 줄여서 불렀는데 황장군이 지키던 곳을 황산이라 부르고 정 장군이 지키던 곳을 정령치라 부르고 성이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키던 고개를 성삼재, 8명의 초병이 지키던 곳을 팔랑치라 불렀다.” (청허당집에서 발췌)

왜? 지리산 뱀사골일까?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으신가? 마한의 왕이 뜬금없이 왜 이곳에 궁을 짓고 피난살이를 했을까? 아마도 운봉에게서 무수히 쏟아지는 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효 왕은 철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시설을 장악함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의 소국들에 지속적 영향력을 끼치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곳에서 철을 생산하는 세력이 목지국 왕의 직할령이거나 친위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72년이라는 지난한 세월을 마한이라 불리는 효 왕이 백사골에 똬리를 틀고 앉아 지키며 백제와 금관가야로부터의 침략도 견뎌 냈다. 쇠(철)의 생산과 공급을 거머쥔 결과일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석탈해가 남원에 근거지를 둔 용성국의 왕이고 효 왕을 지리산 뱀사골에 은둔시킨 친위 세력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여본다.
석탈해가 마한의 효왕의 집권 세력이었는데 마한이 백제에 밀리고 금관가야의 세력이 압박해 오자  김수로의 금관가야에 대항하다가 힘에 밀려 쫓겨나 아진포로 갔다.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의 김수로왕 신화에 따르면 이때 갑자기 완하국(琓夏國) 함달왕(含達王)의 부인이 임신하여 달이 차서 알을 낳았다. 그 알이 변하여 사람이 되었기에, 이름을 탈해(脫解)라고 하였다. 석탈해가 바다를 따라 가락국에 왔는데, 키가 3척이고 머리둘레가 1척이었다. 기꺼이 대궐로 나가서 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으러 왔소.”
왕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나에게 명해서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은 장차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 함이다. 감히 하늘의 명을 어기고 왕위를 남에게 줄 수도 없고, 또 내 나라와 백성을 너에게 맡길 수도 없다.”
탈해가 말하기를 “그러면 술법(術法)으로 겨루어 보겠는가?” 하니, 왕이 좋다고 하였다.
잠깐 사이에 탈해가 변해서 매가 되니 왕은 변해서 독수리가 되었고, 또 탈해가 변해서 참새가 되니 왕은 변해서 새매가 되었다. 이렇게 변하는 데 순간도 걸리지 않았다. 탈해가 제 모습으로 돌아오자, 왕도 역시 본 모습이 되었다.
탈해가 그제야 엎드려 항복하고 말하기를 “내가 술법을 겨루는 곳에서 매가 독수리에게, 참새가 새매에게 잡히기를 면한 것은, 모두 성인께서 죽이시기를 싫어하는 어진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왕과 왕위를 다투기가 진실로 어렵습니다.” 곧 왕에게 절을 하고 하직하고 나갔다. 이웃 교외의 나루에 이르러 중국에서 온 배가 닿는 수로(水路)를 따라가려고 했다. 왕은 그가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반란을 꾀할까 염려하여 급히 수군 500척을 보내서 쫓게 하였다. 탈해가 계림(鷄林)의 국경으로 달아나므로 수군은 모두 돌아왔다. 여기에 실린 기사는 신라의 것과는 아주 다르다.

청허당집


마한 효왕의 몰락과 석탈해의 등장이 겹친다는 점이다. 쿠데타를 꿈꾸다가 실패한 석탈해가 배를 타고 탈주하였고 진한의 영토였던 아진포에 도착, 토착 세력인 아진의선(阿珍義先)과 연맹하여 호공이라는 세력가를 몰아내고 쇠를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남해왕의 사위가 되고 신라 4대 왕이 되었다. 그 후 석탈해의 후손이 9대 왕이 되고 석 씨가 16대까지 왕을 한 뒤 김알지계의 후손에게로 왕위가 넘어가고 그 후 계보는 다르나 어쨌든 김 씨 일족이 왕위를 계속하게 된다.

그 후 역사에서 운봉은 아막이라는 지명으로 등장하면서 마한  목지국 등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이제 이곳은 동쪽의 패권자 신라와 서쪽의 패권자 백제가 맞붙는 국경선이 되었다.  
통일신라를 거처 조선에 이르고 근현대까지의 진한하고 찬란하며 스팩트클한 우리 운봉의 역사를 독자들과 함께 탐구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다음 호에 계속 


2023. 07. 29. 
김정섭님 모친 유정삼 여사 별세
상주 : 김정서,김정윤,김정봉,김정섭,강갑구
장지 : 승화원~산청호국원


2023. 07. 31.
김대훈님의 빙부 정수성님 별세 
상주 : 정희영, 정현영,김진미, 김선용,정은이
         정은정, 정숙인,김대훈, 권승호
장지 : 전북 임실군 강진면 부홍리 가족묘 선영


커피 한 잔과 소통

커피 한잔하자는 이야기 다들 많이 해보셨을 것이다. 어느 때는 낭만적인 관계의 시작 단어로, 어떨 때는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섰을 때 누군가에게 조언을 얻고자 했을 때, 사업 비즈니스의 관계를 풀어나갈 때, 누구에게나 일상에서 가볍든, 가볍지 않든 커피 한 잔에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어떨 때는 속사정을, 혹은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며 길지 않은 하루 중 부담 없이 시간을 소모할 수 있는 공간마저 되어버린 카페와 커피 한 잔은 이제 사람들의 일상 속 빠질 수 없는 일과마저 되어버린 느낌마저 들게끔 되어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 커피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시간이 갈수록 커피는 일상화되고, 술이나 담배와도 대신 할 수 없을 만큼 커피는 대체 불가의 자리까지 올라와 버렸다. 가면 갈수록 골목골목마다 늘어나는 카페와 커피숍들은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한다는 사람의 수를 반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이제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출근길의 손에 들고 가고, 일에 집중이 필요할 때, 중요한 업무나 협상 중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커피 한 잔에 중독되어 버린 사람들은 단순히 우리의 삶에 여가로만 볼 게 아니라, 생활필수품 중 하나로 봐도 무방하다. 많이들 직장인들만 커피를 많이 마신다고들 생각할 수도 있으나, 예로부터 커피는 문학가, 철학자, 예술인들 많은 지성인에게 특히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하루에 2~30잔씩 마셨다는 괴테, 프랑스 문학의 거장 발자크,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고종황제까지도 말이다. 커피에는 특유의 각성효과가 집중력을 상승시키고 몰입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특유의 부드러우며 다양한 향들이 사람들의 후각을 깨우기 때문일까? 무엇이 되었든, 사람 각자의 취향에 따라 그들의 창의성과 감성을 발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던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커피 취향을 안다는 것의 의미를 다들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이제는 사무실, 집 밖을 나가면 서너 걸음을 건너 카페가 즐비하여 각자의 취향에 맞는 카페를 찾아다닌다. 혹자는 분위기를 중시하기에 콘셉트가 좋은 카페를, 누군가는 본인에게 너무나도 딱 맞는 향을 가진 커피 한 잔을 들기 위해 맛있는 카페를, 커피 메뉴를 고르다 보면 서로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알게 되게끔 마련이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향을 즐기는구나 혹은 열량을 신경 쓰는구나. 카페라테를 시키면 부드러운 걸 좋아하는구나 혹은 배가 덜 찼나 싶기도 한 등, 직장동료라면 서로의 커피 취향을 알게 되게끔 마련이다. 예전의 커피 믹스 시절 커피 : 설탕 : 크림의 비율이 관심의 척도였다면, 지금은 서로 선호하는 커피 취향을 알게 됨에 따라 서로 간의 거리를 표현해 주지 않을까.


-바리스타 김건우-





2023년 7월 27일 기준 운봉인구

○ 2054세대 3,707명(남1,792 여1,915)  


남원사랑상품권 운영 변경 안내  

담당 조정호 620-3815

시 행 일 : 2023. 7. 31.(월)
가맹점 등록 제한 : 연매출 30억 초과 사업장 가맹점 제한 ※ 기존 가맹점도 등록 취소 (다만, 농민수당 등 정책수당은 적용 예외)
구매한도 : (당초) 월 100만원 → (변경) 월 70만원
보유한도 : 1인 최대 150만원 보유 가능 (카드 모바일)


2023년 귀농귀촌 동네작가 지원사업    

담당 김우승 620-3808
우리 시는 도시민 유치 촉진을 위해 관내 농촌지역 마을주민(귀농귀촌인)을 동네작가로 선정하여, 정기적인 귀농·귀촌 관련 홍보 및 지역기반 정보,  콘텐츠를 제작하는「귀농·귀촌 동네작가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사업대상 : 남원시 귀농귀촌인 중 희망자
    - 관내 전입 5년차 이하 및 개인 SNS 운영자 우선 선발 
○접 수 처 : 남원시청 농촌활력과 새삶터정책팀
   (063-620-6364)
○ 사업내용 : 마을소개, 농촌생활 및 영농현장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 후 게시
○ 지원내용 : 건당 3만원 월 4건 최대 12만원 한도 

찾아가는 현장 시장실 

민선8기 1주년을 맞은 최경식 남원시장은 2023. 7. 27.(목) 운봉읍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운봉읍 33개 마을 이장님들을 모시고 민생현안 애로사항 및 건의사항을 듣는 <찾아가는 현장시장실>을 진행 하였다.  

 

운봉읍 지역사회보장 협의체

「사회보장급여의 이용 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에 따라 읍면동 단위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살피고, 알리고, 보살피는 지역복지 공동체 조성을 위해 2018년 조직되었으며 지역주민과 행정이 협력해 지역의 복지 욕구와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데 힘쓰고 있다.

현재 제4기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장수호, 양재우 공동위원장과 14명의 위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명절 취약계층 선물 나누기”, “독거노인 및 장애인 가정 밑반찬 지원사업”, “주거 취약계층 집수리” 등등 운봉읍 복지증진을 위한 여러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반찬 나눔 봉사를 위해 수고하는 농가주부 모임 회장 박선임 왼쪽부터 권미경,모미자,정영란,김영옥,박선임


위 사업의 재원은 “운봉 복지 허브화 기금”이며 운봉의 지역복지 증진을 위해 매월 정기 기부금과 연말연시 성금으로 지정기탁 받은 기부금이다.  현재 운봉읍 복지 허브화 기금계좌로 매월 마흔여섯 분이 일정액을 기부하고 계시며 20여 단체 및 개인이 일시 지정 기탁해 주셨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고 지역의 자원으로 도와주고 연계를 통해 모두가 행복한 운봉 복지 공동체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기부 및 문의사항 운봉읍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  ☏ 620-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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